PwC의 오스카 ‘배달사고’

지난달 26일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막판에 믿기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작품상 수상작이 잘못 발표됐던 까닭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작품상 시상자로 나선 원로배우 워런 비티는 잘못된 봉투를 전달받았다. 함께 시상자로 나온 여배우 페이 더너웨이는 ‘라라랜드(La La Land)’로 호명했으나 진짜 작품상 수상작은 ‘문라이트(Moonlight)’였던 것이다.

이 같은 치명적인 실수는 오스카 시상식 투표를 담당했던 회계법인 PriceWaterhouseCoopers(PwC) 측이 발표자에게 봉투를 잘못 전달해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었다.

PwC는 미국 4대 회계법인 중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전 세계 157개국에 16만여 명의 회계사, 변호사를 고용해 회계감사는 물론 세무 컨설팅, M&A 등 경영자문, 재무 컨설팅, 국제무역 및 투자자문을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PwC는 82년 동안 아카데미 시상식의 투표 및 봉투 전달을 담당하며 투표절차를 감사하고 보안유지 및 시상자에게 봉투를 건네는 일까지 맡고 있다. 

PwC는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수상자 봉투를 2개씩 마련한다. PwC 소속 회계사 2명이 무대 양쪽에서 각각 24개의 봉투가 들어있는 2개의 가방을 들고 시상을 준비하는데 아카데미 관련자들도 이 봉투에 접근하지 못한다.

보도에 따르면 30년 경력의 베테랑 회계사인 브라이언 컬리넌(PwC 파트너)은 작품상 시상 바로 직전 트윗에 백스테이지 사진을 올리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하면서 봉투 전달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카데미 시상식에 왜 회계법인이 관여하게 됐는지 궁금해진다. 오스카는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여서 비밀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회계법인에 회원들의 투표관리 작업을 맡겼다고 한다. 업무상 취득한 고객의 비밀을 절대 누설치 않는다는 회계사의 직업윤리를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

아카데미와 인연을 맺은 탓에 PwC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진출, 비즈니스를 키우고 몸집을 불리는 등 업계의 공룡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어쨌거나 PwC는 한 사람의 실수로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명예와 권위를 날려버리는 불행을 겪게 됐다. 단순한 ‘봉투 배달 사고’가 아닌 오스카 역사상 최대의 오점으로 기록됐으니 하는 얘기다. 어쩌면 세계 1위라는 자만심과 교만에 빠져 이 같은 황당한 사고가 일어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PwC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고한다. “Probably Wrong Card”(아마도 틀린 카드)

어디 PwC뿐이겠는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만 봐도 그렇다. 그린을 평정한 우즈는 섹스 스캔들을 일으켜 어렵게 쌓았던 명성이 한순간에 훅 가고 말았다. 

‘사이클 영웅’ 랜스 암스트롱도 비슷한 케이스. 암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정상에 우뚝 서 인간승리의 표본으로 추앙받은 그였으나 금지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들통나 나락으로 떨어졌지 않은가.

복스왜건의 예도 다르지 않다. 한때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로 군림했지만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스모그 장치 조작이라는 사기행각을 벌였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해프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딱 하나. 잘 나갈 때 더욱 겸손하라는 게 아닌가 싶다. 기업이나 개인이나 마찬가지다.

김장식 공인회계사
San Die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