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꽤 쌀쌀해 졌다.
비가 좀 처럼 내리지 않는 샌디에이고에서
오늘따라 아침부터 치적치적 비가 내리고있다.
이런 날은 책을 읽든지 음악을 들으며 묵은 책들을
정리하기 좋은 날씨다. 대략 치워 넣고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했다. 요즘은 DVD로 영화를 보는게 대세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버리지 않고 남겨둔 고전명화
DVD가 수십개 있다. 그중 1호가 ‘National Velvet’
(1944년작)이다. 한국서는 1950년대에 ‘녹윈의 천사‘로
상영되었다. Elizabeth Taylor (1932-2011)가 12살 때
주연한 영화로 이 영화를 학교단체로 첨보고
테일러의 인형같은 얼굴에 매료되어 거푸 세번이나
몰래 혼자가서 관람했던 기억이있다.
오늘은 좀 심각한 영화를 볼가하고 ‘Citizen Kane’
(시민케인-1941년작)을 집었다. 1940년 당시 25세이
었던 Orson Wells (1915-1985)가 감독하고 주연한
이 영화는 역사상 최고의 걸작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영화의 시작은 언론재벌 케인이 홀로 숨을 거두며 남긴
마지막 말 “로즈버드“에 대해 미스터리를 취재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취재하던 기자는 많은 시도를 하지만 미스터리를 찾지 못
하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연히 나타나게 된다.
케인의 화려한 유산들 중 값이 나가는 물건들은 경매로
팔려나가기 위해 쌓여있고 더는 쓸모없는 물건들이
불 속으로 던져진다. 그 중하나가 케인이 어린 시절에
즐겨 타던 썰매이다. 그 썰매에는 ‘ROSEBUD’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바로 그 썰매의 이름이 로즈버드이다.
부와 명예를 다 가졌던 케인이 가장 그리워 했고 결코 가지지
못했던 것은 잃어버린 그의 유년기였던 것이다.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은 ‘인생의 성공은 자신의 업적의 크기가 아니라
자기에게 제일 소중하고 행복했던 한 순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에게도 소중한 ‘로즈버드‘가 있었다.
아주 오래된 ‘축음기‘(유성기)였다.
중학1년때 10살 위의 막내 누나가 시집가면서 평소
애지중지하던 이 축음기를 나에게 물러 주었다.
수동식 태엽으로 감은후 레코드판(SP음반)을 올려
바늘이 달린 해드로 ‘소리‘를 듣고 끝나면 바늘을 갈아
끼워야 했다. 이 축음기와 함께 음반을 몇개 받았는데
도무지 생소한 노래였다. 그러나 호기심에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듣고 또 듣고 하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Winterreise) 전집이 었다.
그 중에 다섯번째 곡이 ‘보리수‘(Der Lindenbaum),
나의 애창곡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클라식 음악에
애착을 느끼고 지금까지 열심히 듣고 있다.
그많은 세월 동안 음악은 나에게 좋은 친구였고
내 자신을 달래는 도구가 되었다.
잃어버린 퍼즐의 한 조각같은 ‘로즈버드‘는 유년시절의
기억, 따뜻했던 어린 시절의 상징이다.
누구나 ‘로즈버드‘ 하나쯤은 지니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