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추억

유학  아들이 어느날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열심히 일해서 내가 이렇게 유학까지 왔는데

아버지께 제대로 감사해  적이 없다.  오늘은 아버지께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 갰다는 생각으로 집에 전화했다마침 아버지가 받았는데받자마자 “엄마 바꿔줄께하여 아들이 “아니요오늘은 아버지하고 이야기 하려고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 떨어졌냐?” 물었다아들은 다시 “아뇨아버지의  은혜를 받은것 감사하고요아버지사랑해요” 했더니 이에아버지는 “지금  마셨냐?” 하더라고.  어머니와는 거의 매일 전화로 소식을 주고 받는데 아버지와는  무심하게 지나다가 보니 어머니만 부모 같았지 아버지는 손님처럼 여겨진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마흔 초반  막내로 태어났다.

대구서 한약방을 하셨는데 항상 한복을 입고 계셨다.

중학교때 친구들이 우리집에 오면  아버지는 어디 가시고 할아버지하고 사느냐고 묻곤 했다.  나에게 아버지란 벽과 같은 존재여셨다항상 나에게 엄격하셨고 사랑한다는 말씀을 한번도 듣지 못했다.  내가 대학다닐때 아버지 환갑 잔치를 삼일동안 하신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육십을 넘는 환갑 잔치는 집안의  행사였다.   나이를 훨씬 넘어선 나는 아버지를 생각한다아버지로 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듣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누구보다 막내 아들인 나를 사랑하셨으리라 믿는다한번은 내가 아주 어렸을  아버지 곁에서 잠들려하는데 나의 머리를 쓰담아

주신걸 기억한다.  내가 아버지와 남편과 가장이 되면서

 손주의 할아버지가  이즈음에  시절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가 그리워 진다.

영화 ‘국제시장‘ (2014년작)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 

덕수가 아버지 앞에서 하는 독백이다.

아버지 약속  지켰지에,

  이만하면   살았지예,

  근데  진짜 힘들었거든예

자식과 손주들이 거실에서 즐겁게 웃고 떠들때 슬그머니 

자기 방으로 들어간 덕수.  흥남부두에서 아버지는 어린 

덕수의 손을 잡으며 엄마와 여동생을  지키라고 부탁했다아버지의 빛바랜 흑백 사진 앞에서 이렇게 말하며 속으로 운다아버지의 대물림이다.

대중가수 인순이는 수년전 뉴욕 맨해튼 카네기홀 무대에 올라 아버지 불렀다.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아버지의 추억도 없는 인순이는  노래를 부르며 혹시 눈물이라도 흘릴까 눈을 부릅뜨고 불렀다한다그러나 끝내 관객도 울고 인순이도 울었다고희지 않는 피부색에 곱슬 머리를  어린 소녀가 거칠었던 한국의 70년대를 살아내기란 몹시 힘들었을 것이다.   노래를 부르며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모두 털어냈으리라.  인순이의 입에서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는데 50년이 걸렸다한다.

 노래를 통해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를 용서한 것일가.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했었다.

    점점 멀어져가버린 

    쓸쓸했던 뒷모습에

     가슴이 다시 아파온다’

       (‘아버지‘ 가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