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모님은 100세를 몇달 앞두고 99세를 일기로
천수를 다하시고 하루 앓고 조용히 소천하셨다.
구순이 넘도록 눈과 귀가 밝으셨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순서대로 각장을 암기할 정도로
기억력도 좋으셨다. 올해가 10주기로 El Camino
Memorial Park (Sorrento Valley)에 묻히셨다.
가족들과 추모예배를 갖은후 주변에 있는 묘소들을
어슬렁 어슬렁 둘러봤다. 이곳에는 나의 가까운
친지들이 많이 잠들어 계신다. 그중에는 나의
client로 삼십년이상 세금보고를 하러온던
Albert씨도 있다.
요즘 부쩍 자주 참석하게되는 남의 장례식에 가면 나의
장례식 장면을 미리 상상해 보게 된다. 묘지를 거닐면서
언젠가 나도 흙으로 돌아갈 그 날을 상상해 보게된다.
이렇게 묘지에 오면 삶이 매우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삶이 있는 곳에 죽음이 있고 삶의 완성이 죽음이기
때문이리라.
220에이커의 넓은 대지에 자리잡은 여기 엘카미노
묘지 동산에는 저명 인사들도 많이 묻혀있다.
Polio 백신 발명자 Jonas Salk, 맥도날드 창업자
Ray Kroc 부부, Coors 맥주 창업주 손자 Joseph
Colors Jr., 50-60년대 유명가수 Patty Page등
수두룩하다. 우리부부도 장모님 곁에 묻힐 자리를
수년전 마련해 두었다.
묘지 동산을 거릴면서 이런 생각도 해 본다.
나는 언제쯤 묻히게 될까.
눈 한번 깜빡였는데 어느새 10월의 문턱을 넘어있고
노을, 지는해, 석양을 마주할 시간이 온 것이다.
나에게도 언젠가 그 시간이 올것이다.
죽음에 대해서 모르는 세가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준비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방법은 거의
비슷하나 죽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인간의
평가는 태어날때 보다 죽는 것으로 결정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고대 로마때 장군이 개선하면 네마리 백마가 모는 전차를
타고 화려한 시가행진을 하며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이때 노예 한명이 장군 바로 옆자리에서 자신의
귓가에 ‘Memento Mori’라고 게속 외치게 한다.
그것은 ‘비록 오늘은 당신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이지만
언젠가는 당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라는 뜻.
그러니 오만하거나 우쭐대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였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수시로 기억하는
사람은 매순간을 충실히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엘카미노 묘지 동산을 걸으며 이곳 저곳 묘비명도
기웃거리며 읽어 본다. 묘비명에 새겨진 그 짧은 몇마디
글 속에 떠난 이의 인생과 추억이 있고, 남겨진 이들의
따뜻한 손길과 애잔한 마음이 느껴진다. 어떤 묘비에는
사진까지 올려 놓았다. 년도를보니 35세의 한창 나이에
요절한가 보다. 문득 묘비명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영국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내 언젠가 이꼴 날줄 알았지‘
생각난다. 문득 롯테그룹 창업주 고 신격호 회장의 묘비에
새긴 ‘거기 가 봤나‘ 문구가 기억난다. 생전에 현장의
중요성을 입버릇처럼 강조했던 말을 새겨 넣은 것이라 했다.
이 묘지 동산을 천천히 내려오며 이런 생각에 잠겨본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오늘에 충실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뜻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