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vs. 치사랑

여름방학 기간동안 북적이며 지나던 손주들이 떠나고 나니

집안이 조용하고 썰렁해 졌다.  오면 좋고 가면 더 좋다는

말이 실감난다.  3년동안 서울 살면서 자주 못 본 탓인지 

그 동안 훌쩍 커버린 손주들이 행동도 많이 달라졌다.

큰 손녀가 12살인데 틴에이저 티가 나기 시작한다.

말수가 적어지고 제법 의젓해 한다.  독서도 하지만 스마트폰, 

아이패드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내가 말을 걸면 미소로 

화답하고 이제는 ‘대화’를 해야한다. 재롱 떨면서 확확 안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흔히 자식이나 손주들에게 주는 사랑을 내리사랑이라고 한다.

내리사랑은 손윗사람의 손아랫사람에 대한 사랑, 특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이른다.  치사랑은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을 사랑함을 말한다.  우리 속담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한다.  즉 윗사람이 아랫사람 사랑하기는

하여도 아랫사람이 윗사람 사랑하기는 좀처럼 어렵다는 말이다.

60년대, 70년대 이민온 1세대가 이제 은퇴를 하면서 우리 주위에

보이는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이 너무 치나치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60세 들어서기가 무섭게 부동산 명의를 자녀에게 이전하고

노인아파트에 들어가는 선배를 보았다.  전문인 딸을 둔 어느 친구는 

아혜 입주하여 노부부가 하루종일 베이비시터하고 있는것을 본다.

어느 고객은 딸의 이혼 소송에서 괜히 모든 걸 일찍 나눠줘서 사위

좋은 일만 시켰다고 울분을 토하던 모습도 보았다.

나이 들어 이민와서 그동안 자녀 위해 내리사랑 쏟아 붓고 정작

본인들은 은퇴플랜 제대로 못세워 경제적 생활이 심각하다는 

신문기사를 종종본다.  경제 매거진 ‘Money’의 조사에 의하면

상당수 자녀들은 자신을 위해서 부모가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치사랑은 점점 줄어

들고 있다고 비유할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은 100세 장수시대에는 내리사랑도 고령층 부모의 

잔여 삶을 위해 적당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의 바탕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해도

잔여 삶을 위해 자식에게 재산 물려 주기를 더디 하겠다는

노년층이 늘어나고 있다.  어느 상속 변호사의 조언이

생각난다.  “자녀에게 몽땅 주고 후회마세요.”